Woolga Choi -Articles

작업을 통하여 최 울가는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영적인 것과 물적인 것을 공존하게 한다.

색깔은 자동차, 나무, 꽃, 동물, 인물, 그리고 별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꿈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넘쳐나온다.

화가는 철저한 기질로 사물의 본질을 깨닫게 하며, 사물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그들의 은밀한 마력을 드러내 보여주는 행위의 자유를 획득했다.

미술 -서술적이라고 생각했던 스타일이 탈출구를 제시하는- 이 펼쳐져서, 최 울가는 우리가 열 페이지에 서술해야야 할 이야기들을 단 한 면에 써놓을 수있고, 그 신비는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우리가 부여한 제역할을 한다.

본능을 표출하고 창작하는 도취감, 환희, 자유는 분명 그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그 어떤 저항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 영원한 젊음과 작품들이 탈출구로 이끌어 주는 힘을 가진 탓에 그의 작품들은 세밀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그림을 추구하는 최 울가의 그림은 색상에 좌우되고 전체적으로 찬란한 분위기와 조화의 개념을 존중한 균형잡힌 구성 안에서 모든 것이 화면위에 던져져 있는 그림인 것이다.

최울가는 명암이 없는 순색의 대비를 이용하고 있고 그래서 흐릿하지 않으며 그 구성은 아주 명확하다. 소재들의 윤곽은 리얼리즘의 규범을 고려해야 한다는 염려없이 그려저 있다. 매우 강렬한 원색들은 화폭에 왕성한 에너지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다.

삼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그 화면들 위에 화가는 명랑하게 색색의 점들을 뿌려놓고 엄청난 창작력 안에서 선과 형태, 선과 색깔 사이에서 섬세하고도 시적인 놀이를 구성하는 행동을 펼쳐나간다.

내가 탁월한 재능을 가진 화가로 여기고 있는 이 화가의 작업에서 결코 마르지 않을 여러 가지 선을 보라.

그림은 일종의 글쓰기이며 그 각각의 글쓰기는 그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인데, 나는 “듣기”를 여러분에게 맡긴다.

 – Gallerie HUE 관장, Bertrand 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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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흘러감에 따라서 되돌아가는 유년기

1월 26일까지 국립국제미술관에서 (90년대의 한국미술에서 – 등신대의 이야기) 전이 열리고 있고, 그것과 약간 날짜가 겹치는 식으로 1월24일부터 최울가전이 ABC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또한 양쪽 전시회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최울가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현대미술의 조류와 그다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최울가 작품(화풍)이 프랑스적이냐고 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세련된 감각을 존중하는 프랑스 화단에 있어서 그의 작품은 꽤 이질적이고, 그 형태는 거칠고, 그 색채는 강렬하다. 강조해서 말하면 뒤뷔페가 주창한 아르 브리트(자연 그대로의 예술)에 가까운 프리미티브(primitive)파이다.

“그 옛날 모두 어린이였던 사람들, 왜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해내려고는 하지 않는것인가…” 라고 노래하는 최울가의 입장에 있어서는 회화제작이란, 생각의 흐름에 따라서 되돌아가는 유년기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의 회화에서는 모든 대상이 어린이의 낙서와 같이 기호화된다. 뼛조각같은, 수목같은, 물고기같은, 동물같은… 기호로 분해되지만, 그러한 것들이 결코 그 사물 자체로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메타모르포제(변용)의 과정을 거쳐서 부유하고 있다. 즉, 이러한 기호는 이중삼중으로 다른 이미지를 수반하는 독해 불가능한 것이다. 이와같은 이른바 암호에 가까운 기호를 접하고서 관찰자는 생명의 비밀을 느끼는 것이다.‘자연의 현상보다도 그 근원적인 생명으로’, 그것이 최울가가 독자적으로 노래하는 동화적인 시정(詩情)의 비밀이다.

-기무라 시게노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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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근교에 있는 Meudon의 아뜰리에서 한국인 화가 최울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말들이 공존하며 충돌하는 세계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려 한다.

80년대말 이래로 완성된 그림들은 모두 화가의 신앙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 화폭들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온갖 남용들을 의식한 한 인간의 현실 참여를 반영하고 있다. 진보걔념에 대한 그의 비판에는 모순과 역설이 적지 않게 섞여있다. 지금도 아직 꼬마들이 사용하고 있는 판암을 이용한 시리즈는 현실에서 가능한 갈등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들면, 채석장에서 산업의 힘으로 채굴된 판암의 이용과 그 판암 위에 자연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소홀히 하고 악용할 때 빚어지는 위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은 이야기의 아로새겨짐과 같은 갈등.

만약 장대한 이야기들의 결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울가의 작품과 같은 절제된 그러나 열정적이고 도취시키며 다양하고 개방된 작품들이 또한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화가 최울가는 그 어느 곳으로도 닿지 않는 여정에 대해, 결국 종착지란 단어에 대해 저항한다. 자연이 그에게 보여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화가는 회화사(繪畫史)를 뛰어넘어 형태와 색깔들이 어우러지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림의 구성을 지배하는 법칙과 구상을 떠나 화가는 지층과 같은 층층의 작업을 수행한다. 이야기들은 직선적이 아닌 신비한 이야기들로 남아 있는다. 인간과 자연의 대치로부터 태어나는 화가는 말한다. “그저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그는 회화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과 양식에 개의치 않는다. 그림을 그린다. 처음에는 파랑, 빨강 그리고 초록이었다. 그리고 부정형, 무질서였다. 무엇인가를 질서있게 배열하고 의미하기 위함이 아니라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것이다.

동물성이며 동시에 식물성이고, 인간적이며 또한 비인간적인 그리고 거시적이며 미시적인 한 세계의 기능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 나뭇잎, 사람의 머리가 그 어떤 분류체계에도 구속되는 않은채 동일한 비율로 다루어지고 있는 세계.

이야기는 단숨에 제시되지 않는다. 그 이야기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의미의 결론을 끌어내거나 아니면 단순히 색깔들을 음미하거나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최울가는 세계를 그린다. “시․공”,“과거의 움직임”,“기억의 뿌리”. 그러나 그는 세계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을 잊지 않는다. 재료와 색소 그리고 그에게 적합한 써포트를 가지고 화가는 자신의 마지막 낙인을 찍는다.

 -Jean Charles Jambon